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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효’ 현장 '효사정(孝思亭)'에서 효심 기른다!...흑석동 주민자치회, '흑석동 연계 역사 알기' 행사 성료
22일, 2차 탐방팀 20여 명, 흑석동 일대 명소 탐방(효사정-심훈생가터-중앙대 타임캡슐 매립지·의혈비 등)

  • 최초노출 2020.10.23 12.45 | 최종수정 2020-10-29 오전 8:25:37

22일 오전, 흑석동 주민자치회(회장 양덕주) 기획홍보행사분과(분과장 이옥연) 주관, '흑석동과 연계한 역사 알기' 2회차 행사에 참가한 탐방팀 20여 명이 출발지인 흑석동주민센터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김영배 기자.


[편집자 주= ‘코로나19’ 시국은 인류 생활 트렌드도 바꿔 놨다. 비대면이 일상화됐다. 소심하거나 주의 깊은 사람은 무서워서 잘 나다니지도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지만 최근 국가방역 수위가 1단계로 낮아짐에 따라 가을을 찾아 집나서는 사람이 불어나고 있다. 


이때 서울 한강변 흑석동 주민자치회가 우리 동네부터 제대로 알자는 슬로건으로 ‘역사탐방 프로그램(흑석동과 연계한 역사알기)’을 마련해 2차에 걸쳐 성공리에 진행함으로써 주목받고 있다. 등하불명이란 말이 있지만, 사실 우리는 생활에 쫒겨 정작 자기가 사는 동네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타 지역에 더 관심을 갖는 불합리한 일상을 살고 있다. 애향심도, 생존안전 불안 해소도 우리 동네를 잘 아는 데서 생겨나는 법이다. 독일이나 이스라엘 등 선진국이 초등교육단계에서 마을 인근부터 현장을 탐방해 숙지시키는 이유다. 


지난 22일 오전, 세이프데이뉴스 김영배 주필이 이들을 집적 동행취재 했다. 본지는 이 기사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⓵전통 미덕 ‘가전충효’ 현장 흑석동 효사정에서 효심 길러라 ⓶ 상록수 심훈이 태어난 곳 어딘지 아는 사람 있나요? 안산도, 당진도 아닌 서울 흑석동에 생가터 표지석 선명한 이유는? ⓷ 흑석동 중앙대학교 탐방. 의혈탑에 서린 사연 아시나요? 설립자 임영신, 독재자 이승만 최측근인데도 애제자들 들고 일어서 한강 건너가 목숨바쳐 나라 구하다]

   

22일 오전, 흑석동 주민자치회(회장 양덕주) 기획홍보행사분과(분과장 이옥연) 주관, '흑석동 연계 역사 알기' 행사 주요 탐방장소인 '효사정(孝思亭)' 모습. 조선 세종 때 우의정 노한이 한양에서 모시고 있던 모친의 상을 당해 개성에 있는 부친의 묘소를 생각하면서 효를 기리기 위해 최초에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배 기자.


지난 22일은 전형적 한국 가을 날씨로써 그지없이 청명했다. 한강물 가장 맑아 보이는 곳. 옛 흑석리, 근대 동작진 마을로 알려진 흑석동을 찾았다. 일제강점기 때 생긴 명수대(明水臺)란 지명이  여태 존재하고 동네 아파트 이름에도 명수대아파트가 있으니 물이 얼마나 맑겠는가. 서울현충원에 인접한 공작포란형 산세에 아늑하게 안긴 포근한 인상 느끼게 하는 마을이다. 서울 유수의 재개발 지역이라 아파트 건축 공사가 한창이기도 하다.


마을 내력은 삼국시절 고구려-백제-신라가 각축을 벌리던 시절부터 있던 마을로 추정된다. 검은돌이 많아서 흑석리 또는 흑석동이 됐다는 설이 있다. 이 검은돌은 새까만 오석(烏石)이 아니다. 강변의 바위는 검푸른 색을 띄게 된다. 흑석동엔 새까만 돌이 없다. 검푸른 돌을 말한다. 지금도 서달산 정상부근에 가면 검푸른 바위가 더러 보이는 이유다. 일제 강점기 한강철교와 인도교 부설시 일본인이 가까운 이곳으로 많이 유입해 거주했다고 전해진다. 명수대 지명도 일본 거부의 별장 이름에서 유래됐다는 말이 있다.

  

이날 예약된 20명의 마을 탐방 인원이 흑석동주민센터에 모였다. 김성아 서은경 해설사 인솔하에 2개조로 나뉘어 10시 경 출발했다. 이 주민센터 건물이 조선일보 방씨 윗대가 일제로부터 하사받았다고 알려진 5000평 대저택 부지에 연한 곳이라 지나는 경로에 보이는 조선일보 방씨 저택 입구엔 조선일보 미디어센터가 있어 자화자찬 자료가 전시돼 있다.

 

노량진 쪽에서 흑석동으로 이어진 고개를 넘어 서울현충원을 지나 강남고속터미널과 동작대로로 이어지는 길이 현충로다. 일행은 이 현충로 따라 동쪽에서 서진해 오늘 첫 코스인 효사정(孝思亭)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보니 한강변에 버티고 선 거대 4각형 건물인 웅장한 고층 원불교 서울포교당이 눈에 확연히 띈다. 장차 이 동네 랜드마크격 건물이 될듯하다. 흑석동은 동떨어진 외진 마을이지만, 인구가 무려 3만 5천이다. 서울의 가장 큰 단일 동으로 추정된다. 원불교뿐만 아니라 달마사 호국사 등 절과 흑석동성당을 비롯해 군소 교회 등 종교시설도 다수 있다.

 

이 곳 흑석동은 서달산 골짜기에서 내려 앉은 강가 마을인데 한강 제방공사로 인해 가운데 끼인 저지대가 돼 빗물이 많이 고이는 곳이다. 특이하게 마을 입구에 빗물펌프장 건물 2동이 떡 버티고 있는 이유다. 홍수 재난 안전에 필수시설이라 실용성이 있으나, 한편 마을 미관을 저해시키는 것으로 수십 년 간 작용해 왔다. 동작구청의 이전 계획이 있어 장차 새로운 모양으로 정비될 예정이다. 강서구 서울식물원 빗물펌프장처럼 용도 바꿔 다시 꾸미면 관광 효과도 있을 것이다.


펌프장 건너편 한강변 자그마한 산등성이 절벽 위에 우뚝 선 정자가 효사정(孝思亭)이다. 이곳 동작구 흑석동 노량진 일대는 한강을 대표하는 정루 10여 개(제천정·천일정·압구정·낙천정·화양정·망원정· 심원정·소악루 등) 용양봉저정효사정2개가 있는 한강도시요 명소다.

   

 22일 오전, 흑석동 주민자치회(회장 양덕주) 기획홍보행사분과(분과장 이옥연) 주관, '흑석동 연계 역사 알기' 2회 차 행사에 참가한 탐방팀 1조가 한강변 절벽위에 우뚝선 효사정 쉼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멀리 강 건너편 북서울 용산 서대문 마포 성동 일대 높고 웅장한 건물군이 바라다 보이는 가히 서울 제일절경이다. 김영배 기자.


秋水共長天一色(추수공장천일색)! 중국 당나라 시인 왕발의 등왕각서에 나오는 글이다. 강서성 남창시에 있는 등왕각에 올라 맑은 가을 물과 푸른 하늘이 일색이로다! 했다. 이 글이 딱 맞아 떨어지는 곳 또 하나를 꼽는다면 바로 이곳이다유장한 한강은 태맥 준령에서 발원해 천리 험곡을 때리며 구비쳐 흘러와 유속이 빠른 대신 그지없이 맑고맑다. 중국의 장강이 길고 유명하다지만, 모르긴해도 그보다 못하지 않을 것이다.


효사정은 이런 한강변 정자 중에서도 가장 가운데 높게 위치해 있다. 소소한 가을 청명한 날 맑은 한강 건너 북쪽으로 북악산, 서로 안산, 동으로 응봉산 아차산 검단산에 남으로 관악산, 우면산 등 동서남북 명산이 위요한 산세에 안온하게 들어앉은 서울 도심이 전체적으로 잘 조망되니 절경이다. 북악산 하늘위로 가을 기러기 떼지어 날아가니 정취 또한 일절이다. 서울 최고의 조망지대가 아닐 수 없다.

   

정면 3칸 측면 2칸에 기와집에 온돌방이 있는 현재의 이 건물은 근대에 다시 축조한 것이다. 지난 해에는 동작구청이 대대적 주변 수리를 거처 재개방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효사정 최초 건립자는 조선 세종 때 교하노씨 우의정 공숙공 노한(盧闬)이 한양에서 모시고 있던 모친 개성왕씨대부인의 상을 당해 그 모를 기리기위해 지었다고 전해온다. 개성에 있는 부친의 묘소와 연계해 한강변 우뚝한 절벽위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마치 고려 유신들이 청계산 망경대(望景臺)에 올라 개성을 바라보던 심정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과거에 이곳은 마을 수호시설인 도당도 있었고, 일제강점기 때는 신사도 있었다고 한다. 여러모로 이 마을 주요 지형 지물인 곳이다. 노한이 지금 서울시장인 한성부윤 직에도 있어던 사람이라 감회가 새롭다. 역사에 유명한 노사신도 후손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17대손이라고 한다. 이런 연유로 노 전 대통령이 쓴 현판이 걸려 있다.


효사정 정문 출입로에는 상록수 작가 심훈의 동상과 시비가 있다. 심훈은 흑석동에서 출생한 문인이자 애국지사다.


그 옆에는 6·25한국전쟁 시 전몰한 '학도의용병현충비'도 있다. 당시 30만의 학도병이 참전해 5만 명은 전국 일원에서 총 들고 전투에 참가해 그 처절함을 더했다. 나라에서는 1955년 6월 25일 이 비를 건립해 추모해 오고 있다. 모두가 숙연한 마음을 가다듬고 묵념으로 고인의 애국심을 존경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전해 올렸다. 선열의 유지를 이어나가는 정성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함은 불문가지다.   


한편, 동양 각국에 많이 산재한 누각 정자라는 것은 다음과 같이 통용된다.

(다소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는 곳)-(놀거나 쉬는 곳)-(석축위에 지어 생활하는 집)-(주거 형식)-(높이 쌓아 멀리 보는 곳)-(자연경관 감상)-(경관 감상과 심성 수양)-(학문공간) 등이 있다. 이처럼 기능과 의미로써 분류한다.


이곳 효사정이 비록 규묘 면에선 중국 4대 누각인 황학루 악양루 등왕각 관작루 등에 비할 바가 못되고 국내에도 광한루 촉석루 죽서루 등에 한참 못미치나, 한강변에 우뚝 선 강변누각이란 점, 특히 효성과 어우러진 특이한 정서가 있는 곳이다. 이곳 동작구는 사육신 묘가 있는 전국 충절을 대표하는 고장이다. 여기에 효의 상징인 효사정까지 있으니 가히 충효의 고장이란 말에 부합한다.

 

이날 행사는 행사는 코로나19 기승 속에서의 두렵고 바쁜 일상을 무릅쓰고 일시나마 동네 소풍하는 시간 내 생활 숨통 한 번 트는 챤스를 마련 것으로서 슬기가 돋보인다. 내 고장 바로 알기와 충효정신도 함께 배우는 과정이라 유익하다. 청명한 시월달 가을 정취 속에 살기좋은 마을 만들어 가는 그들만의 자부심도 엿보였다.

   

흑석동 효사정 입구에 있는 6·25한국전쟁 전몰 '학도의용병현충비' 모습이다. 이 한강변은 6·25한국전쟁 시 대격전지였기에 대표적으로 이곳에 세운 것이다. 김영배 기자.

(다음 주엔 2회 차 연재로 이어집니다)

주필실 김영배 주필 겸 상임고문 kimyb123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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