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Lena(이경희) Truth Leem(임진실)작가 여성폭력 주제“우리가 공존할 수 있을까?” 전시회 개최
- “우리가 공존할 수 있을까?” 전시회 포스터 =K.P갤러리 제공Korea Photographers Gallery (이하 K.P 갤러리)는 지난 20일부터 3월 11일까지 이경희, 임진실 작가를 초대하여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여성폭력을 주제로 “우리가 공존할 수 있을까” 전시를 개최한다.전시에 초대된 두 명의 작가는 여성이자 동시에 가정폭력과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로서, 그리고 예술가로서 경험한 과거를 드러내는 작업을 통해, 정신적, 육체적 외상과 트라우마, 그리고 상존하는 불안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해낸다. 두 작가의 작업은 하나의 테마 안에서 사진, 영상, 사운드 등 다양한 형식을 통해 전개되며, “우리가 공존할 수 있을까?” 라는 궁극적인 질문을 관객에게 던진다.2020년 겨울, 두 명의 작가가 데이트 폭력과 가정폭력의 생존자로서의 경험을 담아 진행한 텀블벅 출판 프로젝트 “Can We Talk Coexistence?"의 연장으로 기획된 이번 전시는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여성에 대한 폭력과 사회적 편견이, 피해자인 당사자들에게 어떠한 상처와 기억들을 남기는지 이야기하고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사회적 편견과 폭력들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K.P 갤러리 관계자는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사회의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성차에 따른 계급적 차이와 가부장제로 인해 발생하는 부당한 폭력과 편협한 사회적 인식을 지적하고, ‘올바른 공존’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오혜련 큐레이터(K.P Gallery ) 전시소개 전문진부한 이야기지만 인류의 절반은 여성이며 모든 인간은 여자인 엄마의 자궁에서 태어난다. 하지만 거의 매일 성희롱이나 구타 등 성폭력과 관련된 보도를 접하게 될 정도로 여성의 인권은 침해 받고 있다. Korea Photographers Gallery는 2021년 두 번째 기획전으로 임진실, 이경희를 초대하여 여성 인권, 그 중에서도 여성폭력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하지만 이번 “우리가 공존 할 수 있을까?” 전시는 거 대 담론이나 철학이 아니라 두 작가 개인의 일상에서 경험한 사건이나 결과를 바탕으로 소서사를 만들고 그 작은 이야기를 통해 사회 속 여성폭력에 대한 논점을 끌어오고자 시도했다.UN의 여성폭력 철폐선언에 따르면 “여성에 대한 폭력이란, 젠더에 기반한 폭력행위 내지 그러한 행위를 하겠다는 협박, 강제, 임의적인 자유의 박탈로서, 그로 인해 모든 영역에서 여성에게 신체적, 성적, 심리적 침해나 괴로움을 주거나 줄 수 있는 행위”(제 1조)를 말한다. 여성폭력은 강간이나 원치 않는 신체적 접촉 을 통한 성폭력뿐 만 아니라 불쾌한 성적 언어를 사용하는 성희롱, 종속적인 지위를 이용한 경제적 협박, 디지털 성폭력, 스토킹, 데이트 폭력 등 여성에게 성적으로 가해지는 신체적, 언어적, 정신적, 경제적 폭력을 말한다.여성폭력은 오랜 세월 동안 시대와 인종, 사회적 지위를 초월해 거리낌 없이 허용되어 왔기 때 문에 피해자인 여성은 자신이 당하는 폭력을 폭력으로 생각하지 못했고 가해자인 남성이나 사회적 인식 또한 마찬가지였다. 여성의 몸에 행사되는 폭력의 특징은 성적이 아닌 행동이 성적으로 포장되어 성애화 된다는데 있다. 그렇기에 정치적, 사회적 문제가 아닌 본능이나 남성 개인의 심리적 문제로 왜곡 축소되었고 방관, 방조하는 제도와 국가에 의해 여성은 이중삼중의 폭력을 겪어왔다.임진실과 이경희는 우리 사회 의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각자의 생각과 시선을 공유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여성이자 여성폭력의 피해 자로서 또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술가로서 정신적, 육체적 외상을 진솔하게 작업하기 위해 폭력이 행해진 장소, 폭력의 흔적이 남은 몸, 그리고 그들의 정신적 트라우마와 관련된 불안을 예술로 드러내고 개인적인 사건을 사회적 문제로 확장 시키는 시도를 한다.그들이 내어 보인 속살은 마주하기 괴로운 우리 사회의 민낯이며 상처이다. 현실은 막막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다. 뉴스에선 성폭력 사건이 보도되고 그 사건 에 많은 사람들은 분노하지만 내일이면 또 쉽게 잊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바뀌기를 기대한다면 사 건에 대한 왜곡이나 소모를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 내어 첫걸음을 내딛어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 의 선택은 먼저 이야기를 하고 글을 쓰고 피해 사실을 꺼내놓는 것이다.이번 “우리가 공존할 수 있을까?” 전시를 통해 여성폭력에 대한 이야기, 자신들의 상처를 꺼내놓는 작가들 을 격려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공감하며 함께 이야기 나누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여성폭력 이나 여성문제는 여성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남성의 문제 우리 사회의 문제이며 우리가 공존하기 위해 해결해 나가야 할 숙제이기 때문이다.일부 전시 작품 사진 =K.P갤러리 제공 ■ 전시회 관련 문의나 상세한 정보는 다음과 같다.▲Korea Photographers Gallery( K.P 갤러리) ▲Tel : 02. 706. 6751 ▲E-mail : curator@kpkorea.co.kr ▲Adress : 서울특별시 용산구 후암동 435-1 B1
- 2021-02-21

- 흑석동에 꼭꼭 숨은 민족 문인 (沈薰) 선생 생가 터 찾다...흑석동 주민자치회 '흑석 연계 역사 알기' 2회 차
- <'흑석동천주교성당' 출입구 안쪽에 있는 심훈 선생 생가터 표지석. 김영배 기자>이날 한강변 제일 절경 효사정(孝思亭) 탐방을 마친 흑석동주민자치회(회장 양덕주) 산하기획홍보분과(분과장 이옥연)가 인솔하는역사탐방팀은 대로를 건너 흑석동 마을 서쪽 입구로 진입해 바로 인근에있는 심훈선생 생가터로 향했다.사람이 꼭 풍수지리학을 신봉하지 않더라도 인간사회에선 귀소본능 때문인지 그 뿌리인 ‘부모 및 생가 터’ 등을 중요하게 여긴다. 세종대왕의 종로 서촌, 인현동 충무공 생가터를 비롯해서, 박정희 구미, 김영삼 거제도, 김대중 하의도 등 생가터를 찾아 헤매고 발굴해 기념하는 것은 위인의 출생 및 출생지는 누구나 관심 갖게 되고 궁금해지기 때문일 것이다.100여 년 전 우리나라에 이런 사람이 있었다. 구한말 혼란한 시기에 서울 흑석동에서 태어나 경성제일고보(현 경기고)를 나와 일본 유학 한 사람으로서, 애국 독립운동가에 시인이자 계몽소설가다. 동아·조선일보 기자에 영화감독인 다재다능했던 사람이다. 이만 하면 누구보다 뛰어난 사람이란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거기다가 변절 등 흠 없는 지순한 충혼충절의 애국자다.<'흑석동천주교성당' . 사진 왼쪽 하단 부분에 심훈 선생 생가터 표지석이 있다. 김영배 기자>1935년에는 이 사람이 쓴 농촌계몽소설 ‘상록수’가 동아일보 창간 15주년기념 현상소설에 당선되면서 크게 각광을 받기도 한 사람이다. 이 소설은 당시의 시대적 풍조였던 브나로드 운동을 남녀 주인공의 숭고한 애정을 통해 묘사한 작품으로서 오늘날에도 널리 읽히고 있다. 이 소설 상록수는 춘원 이광수의 소설 ‘흙’과 함께 양대 농촌계몽소설로 알려져 있다. 1981년 일본에서도 번역·간행돼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한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된 곳일 뿐인 안산시도 상록구와 상록수역이 있을 정도다.이 외에도 <탈춤>이란 최초의 영화소설도 썼다. 애국시(愛國詩) <그날이 오면>도 써냈다. 수십 종의 소설도 신문에 연재했다.<심훈 선생 사진. 사진 출처= 네이버, 김영배 기자>누굴까. 그렇다. 그는 심훈(沈熏) 선생이다.그는 1901년 서울 흑석동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활동했으나, 1932년, 즉 사망 4년 전엔 일제 탄압을 피해 부모의 고향인 충남도 당진(당진시 송악읍 부곡리)으로 낙향해 살았다. 그곳에 필경사(筆耕舍)란 집을 짓고 많은 문학 할동을 했다. 조선중앙일보에 <직녀성>을 연재해 원고료로 집을 지었다고 한다. 불후의 명작 상록수도 여기서 썼다. 둘째와 셋째 아들도 이곳서 얻었다. 문학산실에다 자식산실인 셈이다. 지금 이 집은 충남기념물 제 107호로 관리되고 있다.사단법인 심훈선생기념사업회도 있다. 심훈 문학상도 제정해 시상하고 있다. 올해 제 7회 문학대상에 정지아 작가의 <검은방>, 장류진 작가의 <도쿄의 마야>가 공동 수상했다. 제24회 심훈문학상은 도재경 소설가와 최세윤 시인이 차지했다. 지난 9월 중순에는 타계 84주년 기념식도 있었다.< 심훈 선생 불후의 명작 소설 상록수 책. 사진출처= 네이버, 글 김영배 기자>그럼 그가 탄생하고 성장기에 생활했던 곳인 이웃동네 흑석동이라고 하는데 어디쯤에 서 태어나 성장했을까 몹시 궁금했다. 지난 22일 청명한 가을날 흑석동 주민자치회 위원으로 구성된 탐사팀을 동행해 그 지점을 찾아 나섰다.그곳은 흑석동 186번지. ‘천주교흑석동성당’ 안에 있었다. 이 성당은 1954년 5월에 노기남 주교에 의해 건립됐다. 앞에는 한강 뒤로는 서달산 줄기가 있는 배산임수형 구릉지에 지어진 건물이다. 120년 가까이 되는 시절에 살다가 이사간 집터를 어떻게 용하게 찾아내 표지석을 세울 수 있었는지 감탄스럽다. 관할 동작구청이 고맙게 느껴진다.만일 그가 36세로 요절하지 않고 춘원처럼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후손에게 좋은 문학작품이나 영화를 얼마나 많이 남겨줬겠는가 하는 생각에 너무도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훈 선생 의 시(詩), 가(歌), 수필집 '그날이 오면' 책자. 이 책은 원래 1930년 3월 1일에 냈으나, 일제의 검열로 인해 출간을 못하고 해방후인 별세한 지 13년 후인 1949년에야 세상에 나오게 됐다.사진출처= 네이버, 글 김영배 기자>심훈 선생 생가터 지근에 한강변 절경인 효사정(孝思亭)이 있다. 자고로 산천정기와 풍광명미해야 인물을 탄생시킨다고 한다. 강변 승경과 산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이곳 흑석동에서 애국자이자 최고의 문인 심훈이 태어난 것이다.심훈, 그는 ‘동방의 애인’, ‘불사조’ 등 두 번에 걸친 연재 중단사건과 애국시 ‘그날이 오면’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작품에는 강한 민족의식이 담겨 있다. ‘영원의 미소’에는 가난한 인텔리의 계급적 저항의식, 식민지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비판정신, 그리고 귀농 의지가 잘 그려져 있으다. 대표작 「상록수」에서는 젊은이들의 희생적인 농촌사업을 통해 강한 휴머니즘과 저항의식을 고취시킨다.<심훈선생 시비, 생가터 건너편 한강변 절벽 위 효사정 가는 입구에 세워져 있다. 김영배 기자>행동적이고 저항적인 지성인이었던 그의 작품들에는 민족주의와 계급적 저항의식 및 휴머니즘이 기본정신으로 관통하고 있다. 특히, 농민계몽문학에서 이후의 리얼리즘에 입각한 본격적인 농민문학의 장을 여는 데 크게 공헌한 작가로서 의의를 지닌다.심훈선생 생가터는 9호선 흑석역에서 동양중학교 방향으로 100미터 거리에 있다. 시내버스는 간선 151, 752 및 지선 5511,5517,5524 등을 이용 가능하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은 덤으로 자연히 인근 한강 절경 효사정(孝思亭)과 중앙대 교정에 있는 의혈탑을 비롯해서 타임캡슐 매립 연못 및청룡상 등도 구경할 수 있다. 후회없는 일석삼조가된다.[심훈(沈熏) 약기]본관은 청송(靑松)으로 본명은 대섭(大燮), 호는 해풍(海風)이다.1901년 심상정의 3남 1녀 중 3남으로 서울 노량진(흑석동)에서 태어나 1915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경기고)에 입학한 뒤 1917 년 조선 왕족 이해영(李海暎)과 혼인했다.1919년 3·1운동에 참여해 체포·투옥됐다. 이후 퇴학 당해 4개 월 간 복역했다. 출옥 후 1923년 중국 항주 절강대학 국문학과를 중퇴하고 귀국했다.귀국 이듬해 부인과 이혼했다. 동아일보사에 입사해 기자 생활시 시와 소설을 썼다. 1926년 동아일보에 ‘영화소설 탈춤’을 연재한 것이 계기가 돼 영화계에 투신했다. 그 이듬해에 일본으로 건너 가 영화를 공부하고 돌아와 ‘먼동이 틀 때’를 원작·각색·감독했다.1928년 조선일보사 기자로 활동하면서 다수의 소설 연재를 하면서 애국시 ‘그날이 오면’을 발표했다. 1931년에 ‘불사조(不死鳥)’를, 1933년에는 ‘조선중앙일보’에 ‘영원의 미소’와 1934년 ‘직녀성’ 등을 연재하기도 했다.1935년에는 유명한 농촌계몽소설 ‘상록수’가 동아일보 창간 15 주년 기념 현상소설에 당선되면서 크게 각광을 받았다. 1936년, 젊은 비교적 나이인 36세에 장티푸스로 사망했다.* 출처 네이버< 심훈 선생 동상, 생가터 건너편 한강변 절벽위 효사정 가는 입구에 세워져 있다. 김영배 기자>(다음 주엔3회 차 연재(민주항쟁의 산 역사 중앙대 의협탑)로 이어집니다)
- 주필실/2020-10-30

- 흑석동에 꼭꼭 숨은 애국 문인 심훈(沈薰)선생 '생가터' 찾다...흑석동주민자치회, '흑석 연계 역사 알기' 행사
- <'흑석동천주교성당' 출입구 안쪽에 있는 심훈 선생 생가터 표지석. 김영배 기자>이날 한강변 제일 절경 효사정 탐방을 마친 흑석동주민자치회(회장 양덕주) 산하기획홍보분과(분과장 이옥연)가 인솔하는역사탐방팀은 대로를 건너 흑석동 마을 서쪽 입구로 진입해 바로 인근에있는 심훈선생 생가터로 향했다.사람이 꼭 풍수지리학을 신봉하지 않더라도 인간사회에선 귀소본능 때문인지 그 뿌리인 ‘부모 및 생가 터’ 등을 중요하게 여긴다. 세종대왕의 종로 서촌, 인현동 충무공 생가터를 비롯해서, 박정희 구미, 김영삼 거제도, 김대중 하의도 등 생가터를 찾아 헤매고 발굴해 기념하는 것은 위인의 출생 및 출생지는 누구나 관심 갖게 되고 궁금해지기 때문일 것이다.100여 년 전 우리나라에 이런 사람이 있었다. 구한말 혼란한 시기에 서울 흑석동에서 태어나 경성제일고보(현 경기고)를 나와 일본 유학 한 사람으로서, 애국 독립운동가에 시인이자 계몽소설가다. 동아·조선일보 기자에 영화감독인 다재다능했던 사람이다. 이만 하면 누구보다 뛰어난 사람이란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거기다가 변절 등 흠 없는 지순한 충혼충절의 애국자다.<'흑석동천주교성당' . 사진 왼쪽 하단 부분에 심훈 선생 생가터 표지석이 있다. 김영배 기자>1935년에는 이 사람이 쓴 농촌계몽소설 ‘상록수’가 동아일보 창간 15주년기념 현상소설에 당선되면서 크게 각광을 받기도 한 사람이다. 이 소설은 당시의 시대적 풍조였던 브나로드 운동을 남녀 주인공의 숭고한 애정을 통해 묘사한 작품으로서 오늘날에도 널리 읽히고 있다. 이 소설 상록수는 춘원 이광수의 소설 ‘흙’과 함께 양대 농촌계몽소설로 알려져 있다. 1981년 일본에서도 번역·간행돼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한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된 곳일 뿐인 안산시도 상록구와 상록수역이 있을 정도다.이 외에도 <탈춤>이란 최초의 영화소설도 썼다. 애국시(愛國詩) <그날이 오면>도 써냈다. 수십 종의 소설도 신문에 연재했다.<심훈 선생 사진. 사진 출처= 네이버, 김영배 기자>누굴까. 그렇다. 그는 심훈(沈熏) 선생이다.그는 1901년 서울 흑석동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활동했으나, 1932년, 즉 사망 4년 전엔 일제 탄압을 피해 부모의 고향인 충남도 당진(당진시 송악읍 부곡리)으로 낙향해 살았다. 그곳에 필경사(筆耕舍)란 집을 짓고 많은 문학 할동을 했다. 조선중앙일보에 <직녀성>을 연재해 원고료로 집을 지었다고 한다. 불후의 명작 상록수도 여기서 썼다. 둘째와 셋째 아들도 이곳서 얻었다. 문학산실에다 자식산실인 셈이다. 지금 이 집은 충남기념물 제 107호로 관리되고 있다.사단법인 심훈선생기념사업회도 있다. 심훈 문학상도 제정해 시상하고 있다. 올해 제 7회 문학대상에 정지아 작가의 <검은방>, 장류진 작가의 <도쿄의 마야>가 공동 수상했다. 제24회 심훈문학상은 도재경 소설가와 최세윤 시인이 차지했다. 지난 9월 중순에는 타계 84주년 기념식도 있었다.< 심훈 선생 불후의 명작 소설 상록수 책. 사진출처= 네이버, 글 김영배 기자>그럼 그가 탄생하고 성장기에 생활했던 곳인 이웃동네 흑석동이라고 하는데 어디쯤에 서 태어나 성장했을까 몹시 궁금했다. 지난 22일 청명한 가을날 흑석동 주민자치회 위원으로 구성된 탐사팀을 동행해 그 지점을 찾아 나섰다.그곳은 흑석동 186번지. ‘천주교흑석동성당’ 안에 있었다. 이 성당은 1954년 5월에 노기남 주교에 의해 건립됐다. 앞에는 한강 뒤로는 서달산 줄기가 있는 배산임수형 구릉지에 지어진 건물이다. 120년 가까이 되는 시절에 살다가 이사간 집터를 어떻게 용하게 찾아내 표지석을 세울 수 있었는지 감탄스럽다. 관할 동작구청이 고맙게 느껴진다.만일 그가 36세로 요절하지 않고 춘원처럼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후손에게 좋은 문학작품이나 영화를 얼마나 많이 남겨줬겠는가 하는 생각에 너무도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훈 선생 의 시(詩), 가(歌), 수필집 '그날이 오면' 책자. 이 책은 원래 1930년 3월 1일에 냈으나, 일제의 검열로 인해 출간을 못하고 해방후인 별세한 지 13년 후인 1949년에야 세상에 나오게 됐다.사진출처= 네이버, 글 김영배 기자>심훈 선생 생가터 지근에 한강변 절경인 효사정(孝思亭)이 있다. 자고로 산천정기와 풍광명미해야 인물을 탄생시킨다고 한다. 강변 승경과 산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이곳 흑석동에서 애국자이자 최고의 문인 심훈이 태어난 것이다.심훈, 그는 ‘동방의 애인’, ‘불사조’ 등 두 번에 걸친 연재 중단사건과 애국시 ‘그날이 오면’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작품에는 강한 민족의식이 담겨 있다. ‘영원의 미소’에는 가난한 인텔리의 계급적 저항의식, 식민지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비판정신, 그리고 귀농 의지가 잘 그려져 있으다. 대표작 「상록수」에서는 젊은이들의 희생적인 농촌사업을 통해 강한 휴머니즘과 저항의식을 고취시킨다.<심훈선생 시비, 생가터 건너편 한강변 절벽위 효사정 가는 입구에 세워져 있다. 김영배 기자>행동적이고 저항적인 지성인이었던 그의 작품들에는 민족주의와 계급적 저항의식 및 휴머니즘이 기본정신으로 관통하고 있다. 특히, 농민계몽문학에서 이후의 리얼리즘에 입각한 본격적인 농민문학의 장을 여는 데 크게 공헌한 작가로서 의의를 지닌다.심훈선생 생가터는 9호선 흑석역에서 동양중학교 방향으로 100미터 거리에 있다. 시내버스는 간선 151, 752 및 지선 5511,5517,5524 등을 이용 가능하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은 덤으로 자연히 인근 한강 절경 효사정(孝思亭)과 중앙대 교정에 있는 의혈탑을 비롯해서 타임캡슐 매립 연못 및청룡상 등도 구경할 수 있다. 후회없는 일석삼조가된다.[심훈(沈熏) 약기]본관은 청송(靑松)으로 본명은 대섭(大燮), 호는 해풍(海風)이다.1901년 심상정의 3남 1녀 중 3남으로 서울 노량진(흑석동)에서 태어나 1915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경기고)에 입학한 뒤 1917 년 조선 왕족 이해영(李海暎)과 혼인했다.1919년 3·1운동에 참여해 체포·투옥됐다. 이후 퇴학 당해 4개 월 간 복역했다. 출옥 후 1923년 중국 항주 절강대학 국문학과를 중퇴하고 귀국했다.귀국 이듬해 부인과 이혼했다. 동아일보사에 입사해 기자 생활시 시와 소설을 썼다. 1926년 동아일보에 ‘영화소설 탈춤’을 연재한 것이 계기가 돼 영화계에 투신했다. 그 이듬해에 일본으로 건너 가 영화를 공부하고 돌아와 ‘먼동이 틀 때’를 원작·각색·감독했다.1928년 조선일보사 기자로 활동하면서 다수의 소설 연재를 하면서 애국시 ‘그날이 오면’을 발표했다. 1931년에 ‘불사조(不死鳥)’를, 1933년에는 ‘조선중앙일보’에 ‘영원의 미소’와 1934년 ‘직녀성’ 등을 연재하기도 했다.1935년에는 유명한 농촌계몽소설 ‘상록수’가 동아일보 창간 15 주년 기념 현상소설에 당선되면서 크게 각광을 받았다. 1936년, 젊은 비교적 나이인 36세에 장티푸스로 사망했다.* 출처 네이버< 심훈 선생 동상, 생가터 건너편 한강변 절벽위 효사정 가는 입구에 세워져 있다. 김영배 기자>(다음 주엔3회 차 연재(민주항쟁의 산 역사 중앙대 의협탑)로 이어집니다)
- 주필실/2020-10-30

- ‘충효’ 현장 '효사정(孝思亭)'에서 효심 기른다!...흑석동 주민자치회, '흑석동 연계 역사 알기' 행사 성료
- 22일 오전, 흑석동 주민자치회(회장 양덕주) 기획홍보행사분과(분과장 이옥연) 주관, '흑석동과 연계한 역사 알기' 2회차 행사에 참가한탐방팀 20여 명이 출발지인 흑석동주민센터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김영배 기자.[편집자 주= ‘코로나19’ 시국은 인류 생활 트렌드도 바꿔 놨다. 비대면이 일상화됐다. 소심하거나 주의 깊은 사람은 무서워서 잘 나다니지도 못한다.이런 상황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지만 최근 국가방역 수위가 1단계로 낮아짐에 따라 가을을 찾아 집나서는 사람이 불어나고 있다.이때 서울 한강변 흑석동 주민자치회가 우리 동네부터 제대로 알자는 슬로건으로 ‘역사탐방 프로그램(흑석동과 연계한 역사알기)’을 마련해 2차에 걸쳐 성공리에 진행함으로써 주목받고 있다. 등하불명이란 말이 있지만, 사실 우리는 생활에 쫒겨 정작 자기가 사는 동네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타 지역에 더 관심을 갖는 불합리한 일상을 살고 있다. 애향심도, 생존안전 불안 해소도 우리 동네를 잘 아는 데서 생겨나는 법이다. 독일이나 이스라엘 등 선진국이 초등교육단계에서 마을 인근부터 현장을 탐방해 숙지시키는 이유다.지난 22일 오전, 세이프데이뉴스 김영배 주필이 이들을 집적 동행취재 했다. 본지는 이 기사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⓵전통 미덕 ‘가전충효’ 현장 흑석동 효사정에서 효심 길러라 ⓶ 상록수 심훈이 태어난 곳 어딘지 아는 사람 있나요? 안산도, 당진도 아닌 서울 흑석동에 생가터 표지석 선명한 이유는? ⓷ 흑석동 중앙대학교 탐방. 의혈탑에 서린 사연 아시나요? 설립자 임영신, 독재자 이승만 최측근인데도 애제자들 들고 일어서 한강 건너가목숨바쳐 나라 구하다] 22일 오전, 흑석동 주민자치회(회장 양덕주) 기획홍보행사분과(분과장 이옥연) 주관, '흑석동 연계 역사 알기'행사 주요 탐방장소인 '효사정(孝思亭)' 모습. 조선 세종 때 우의정 노한이 한양에서 모시고 있던 모친의 상을 당해 개성에 있는 부친의 묘소를 생각하면서 효를 기리기 위해 최초에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배 기자.지난 22일은 전형적 한국 가을 날씨로써 그지없이 청명했다. 한강물 가장 맑아 보이는 곳. 옛 흑석리, 근대 동작진 마을로 알려진 흑석동을 찾았다. 일제강점기 때 생긴 명수대(明水臺)란 지명이 여태 존재하고 동네 아파트 이름에도 명수대아파트가 있으니 물이 얼마나 맑겠는가. 서울현충원에 인접한 공작포란형 산세에 아늑하게 안긴 포근한 인상 느끼게 하는 마을이다. 서울 유수의 재개발 지역이라 아파트 건축공사가 한창이기도 하다. 마을 내력은 삼국시절 고구려-백제-신라가 각축을 벌리던 시절부터 있던 마을로 추정된다. 검은돌이 많아서 흑석리 또는 흑석동이 됐다는 설이 있다. 이 검은돌은 새까만 오석(烏石)이 아니다. 강변의 바위는 검푸른 색을 띄게 된다. 흑석동엔 새까만 돌이 없다. 검푸른 돌을 말한다. 지금도 서달산 정상부근에 가면 검푸른 바위가 더러 보이는 이유다. 일제 강점기 한강철교와 인도교 부설시 일본인이 가까운 이곳으로 많이 유입해 거주했다고 전해진다. 명수대 지명도 일본 거부의 별장 이름에서 유래됐다는 말이 있다. 이날 예약된 20명의 마을 탐방 인원이 흑석동주민센터에 모였다.김성아 서은경 해설사 인솔하에2개조로 나뉘어 10시 경 출발했다. 이 주민센터 건물이 조선일보 방씨 윗대가 일제로부터 하사받았다고 알려진 5000평 대저택 부지에 연한 곳이라 지나는 경로에 보이는 조선일보 방씨 저택 입구엔 조선일보 미디어센터가 있어 자화자찬 자료가 전시돼 있다. 노량진 쪽에서 흑석동으로 이어진고개를 넘어 서울현충원을 지나 강남고속터미널과 동작대로로 이어지는 길이 현충로다.일행은 이 현충로 따라 동쪽에서서진해 오늘 첫 코스인 효사정(孝思亭)으로향했다. 가는 길에 보니 한강변에 버티고 선 거대 4각형 건물인 웅장한 고층 원불교 서울포교당이 눈에 확연히 띈다. 장차 이 동네 랜드마크격 건물이 될듯하다. 흑석동은 동떨어진 외진 마을이지만, 인구가 무려 3만 5천이다. 서울의 가장 큰 단일 동으로 추정된다. 원불교뿐만 아니라 달마사 호국사 등 절과 흑석동성당을 비롯해 군소 교회 등 종교시설도 다수 있다. 이 곳 흑석동은서달산 골짜기에서 내려 앉은강가 마을인데한강 제방공사로 인해 가운데 끼인 저지대가 돼빗물이 많이 고이는 곳이다. 특이하게 마을 입구에 빗물펌프장 건물 2동이 떡 버티고 있는 이유다. 홍수 재난 안전에 필수시설이라 실용성이 있으나, 한편 마을 미관을 저해시키는 것으로 수십 년 간 작용해 왔다. 동작구청의 이전 계획이 있어 장차 새로운 모양으로 정비될 예정이다. 강서구 서울식물원 빗물펌프장처럼 용도 바꿔 다시 꾸미면 관광 효과도 있을 것이다. 펌프장 건너편 한강변 자그마한 산등성이 절벽 위에 우뚝 선 정자가 효사정(孝思亭)이다. 이곳 동작구 흑석동 노량진 일대는 한강을 대표하는 정루 10여 개(제천정·천일정·압구정·낙천정·화양정·망원정· 심원정·소악루 등) 중 ‘용양봉저정’과 ‘효사정’ 등 2개가 있는 한강도시요 명소다. 22일 오전, 흑석동 주민자치회(회장 양덕주) 기획홍보행사분과(분과장 이옥연) 주관, '흑석동 연계 역사 알기'2회 차 행사에 참가한탐방팀 1조가 한강변 절벽위에 우뚝선 효사정 쉼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멀리 강 건너편 북서울 용산 서대문 마포 성동 일대 높고웅장한 건물군이 바라다 보이는 가히 서울 제일절경이다. 김영배 기자.秋水共長天一色(추수공장천일색)! 중국 당나라 시인 왕발의 등왕각서에 나오는 글이다. 강서성 남창시에 있는 등왕각에 올라 맑은 가을 물과 푸른 하늘이 일색이로다! 했다. 이 글이 딱 맞아 떨어지는 곳 또 하나를 꼽는다면 바로 이곳이다.유장한 한강은 태맥 준령에서 발원해 천리 험곡을 때리며 구비쳐 흘러와 유속이 빠른 대신 그지없이 맑고맑다. 중국의 장강이 길고 유명하다지만, 모르긴해도 그보다 못하지 않을 것이다.효사정은 이런 한강변 정자 중에서도 가장 가운데 높게 위치해 있다. 소소한 가을 청명한 날 맑은 한강 건너 북쪽으로 북악산, 서로 안산, 동으로 응봉산 아차산 검단산에 남으로 관악산, 우면산 등 동서남북 명산이 위요한 산세에 안온하게 들어앉은 서울 도심이 전체적으로 잘 조망되니 절경이다. 북악산 하늘위로가을 기러기 떼지어 날아가니 정취 또한 일절이다. 서울 최고의 조망지대가 아닐 수 없다. 정면 3칸 측면 2칸에 기와집에 온돌방이 있는 현재의 이 건물은 근대에 다시 축조한 것이다. 지난 해에는 동작구청이 대대적 주변 수리를 거처 재개방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효사정 최초 건립자는 조선 세종 때 교하노씨 우의정 공숙공 노한(盧闬)이 한양에서 모시고 있던 모친 개성왕씨대부인의 상을 당해 그 모를 기리기위해 지었다고 전해온다. 개성에 있는 부친의 묘소와 연계해 한강변 우뚝한 절벽위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마치 고려 유신들이 청계산 망경대(望景臺)에 올라 개성을 바라보던 심정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과거에 이곳은 마을 수호시설인 도당도 있었고, 일제강점기 때는 신사도 있었다고 한다. 여러모로 이 마을 주요 지형 지물인 곳이다. 노한이지금 서울시장인 한성부윤 직에도 있어던 사람이라 감회가 새롭다. 역사에 유명한 노사신도 후손이다.노태우 전 대통령이17대손이라고 한다. 이런 연유로 노 전 대통령이 쓴 현판이 걸려 있다.효사정 정문 출입로에는 상록수 작가 심훈의 동상과 시비가 있다. 심훈은 흑석동에서 출생한 문인이자 애국지사다. 그 옆에는 6·25한국전쟁 시 전몰한 '학도의용병현충비'도 있다. 당시 30만의 학도병이 참전해 5만 명은 전국 일원에서 총 들고 전투에 참가해 그 처절함을 더했다. 나라에서는 1955년 6월 25일 이 비를 건립해 추모해 오고 있다. 모두가숙연한 마음을 가다듬고 묵념으로 고인의 애국심을 존경하고감사하는 마음을 전해 올렸다. 선열의 유지를 이어나가는 정성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함은 불문가지다.한편, 동양 각국에 많이 산재한 누각 정자라는 것은 다음과 같이 통용된다.樓(다소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는 곳)-亭(놀거나 쉬는 곳)-閣(석축위에 지어 생활하는 집)-堂(주거 형식)-臺(높이 쌓아 멀리 보는 곳)-園(자연경관 감상)-軒(경관 감상과 심성 수양)-齋(학문공간) 등이 있다. 이처럼 기능과 의미로써 분류한다. 이곳 효사정이 비록 규묘 면에선 중국 4대 누각인 황학루 악양루 등왕각 관작루 등에 비할 바가 못되고 국내에도 광한루 촉석루 죽서루 등에 한참 못미치나, 한강변에 우뚝 선 강변누각이란 점, 특히 효성과 어우러진 특이한 정서가 있는 곳이다. 이곳 동작구는 사육신 묘가 있는 전국 충절을 대표하는 고장이다. 여기에 효의 상징인 효사정까지 있으니 가히 충효의 고장이란 말에부합한다. 이날 행사는행사는 코로나19기승 속에서의두렵고 바쁜 일상을 무릅쓰고 일시나마 동네 소풍하는 시간 내 생활 숨통 한 번트는 챤스를 마련 것으로서 슬기가 돋보인다. 내 고장 바로 알기와충효정신도 함께 배우는 과정이라 유익하다.청명한 시월달 가을 정취 속에 살기좋은 마을 만들어 가는그들만의 자부심도 엿보였다. 흑석동 효사정 입구에 있는 6·25한국전쟁 전몰 '학도의용병현충비' 모습이다. 이 한강변은 6·25한국전쟁 시 대격전지였기에 대표적으로 이곳에 세운 것이다. 김영배 기자.(다음 주엔 2회 차 연재로 이어집니다)
- 주필실/2020-10-23

- 서정대학교·한국토요타자동차 자동차기술 인재육성 맞손
- 서정대학교와 한국토요타자동차는 상호협력을 통한 기술 인재양성 협약체결 후 사진을 찍고 있다.서정대학교(총장·양영희)는 22일 한국토요타자동차(주)와 함께 서정대학교 대회의실에서 자동차기술 인재육성을 위한 협약을 체결 했다고 밝혔다.이날 업무협약은 자동차과 실습실 투어를 시작으로 서정대학교 및 한국토요타자동차 소개, 상호 인사말 순으로 진행 진행됐으며, 서정대학교 양영희 총장, 위상배 부총장, 이지훈 기획조정실장, 김종윤 산학협력단장, 박진혁 자동차과 학과장, 전석환 스마트자동차과 학과장, 평생직업교육처 한희진 부센터장, 이현주 교수, 한국토요타자동차(주) 이병진 상무, 정해양 상무, 곽지성 차장, 김세훈 차장, 유민하 과장, Muto Yuki 등 14명 참석했다.업무협약에 따라 한국토요타자동차는 ▲토요타·렉서스 하이브리드 기술 교육 ▲브랜드 철학과 고객만족 서비스 ▲우수학생 일본 토요타자동차 연수 ▲교보재 차량 제공 ▲딜러 등과 연계하여 현장 인턴 기회 및 취업 상담 등을 대학에 제공 할 예정이다.박진혁 자동차과 학과장은 도요타·렉서스 하이브리드 차종의 강력하고 독자적인 기술은 자율주행자동차와 시스템에서도 달리는 즐거움을 함께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대학이 협력 할 수 있는 부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 2020-10-22
서 장관표창 등 55명 시상식 사진=한국대학발명협회 제공.jpg)
- 2020 제9회 아시아로하스산업대전 전수식 개최
- 지난 22일, 서울무역전시관(SETEC)서 장관표창 등 55명 시상식 사진=한국대학발명협회 제공Asia LOHAS 산업대전(조직위원장 이주형 교수)은 국민건강과 행복을 추구하는 로하스 휘게(hygge) 산업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 기업의 지속가능 가치와 행복한 삶을 위한 선도적이고 창의적이며 소비자가 존경하는 기업을 발굴·육성하는 제9회‘아시아 로하스 산업대전”을 서울무역전시관(SETEC)에서 지난 22일 COVID-19로 인해 사회적 거루두기 단계에 맞춰 순차적으로 전수식을 개최했다고 밝혔다. 친환경 산업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지속 가능한 아시아로하스 기업은 편안하게, 따뜻하게, 행복한 삶을 창조하는‘그린뉴딜’분야별 인증기업으로 친환경제품, 환경경영, 지속가능기업, 친화적기업, 의료서비스기업, 친환경건설, 농업 방제기업 등 각 분야에서 우수한 기업을 선정하였으며 수상자는 아래와 같다. ▲환경부장관상 (주)우람|홍민수 대표이사, (주)멀티필름코리아|배정혜 대표이사 ▲보건복지부장관상 (주)엠티씨|석민수 대표이사, (주)대운씨스템|이병창 대표이사, 더 바른|임화목 대표 ▲국토교통부장관상 T&H비나(주)|구본수 대표이사 ▲산업통상자원부장관상 (주)태양중공업|김정오 회장, (주)금원인터내셔널|유민성 대표이사, (주)글로제닉|박규현 대표이사 ▲중소벤처기업부장관상 (주)큐브컴|김미선 대표이사, (사)퍼스트경영기술연구원|정명수 상임이사, (주)정주하우징|김명찬 대표이사, (주)하이엠티|조동술 대표이사, 태운이엔지(주)|박태운 대표이사 ▲농림축산식품부장관상(주) 우보티에스에프|한상규 대표이사 ▲식품의약품안전처장상 고기리막국수(주)|김윤정·유수창 공동대표이사, 정원인쇄|이시윤 대표, 금산고려홍삼(주)|이홍림 대표이사, 쉬안(주)|김변삼 대표이사 ▲특허청장상 세종경영연구원(주)|이상훈 대표이사, 와이제이코퍼레이션|김윤종·김인종 공동대표, 한일산업사|백동기 대표, (주)한호기술|김경근 대표이사, (주)상상씨앤씨|이주연 대표이사, NH농협은행|조용진 지점장, (주)씨지인사이드|원종욱 대표이사 ▲서울특별시장상 (주)한국축제방송|조윤호 대표이사, (주)아이센스|윤종우 상무이사, (주)스틸코리아|강명숙 부회장 ▲국립공주대학교총장상(주)올네이션|박성율 회장, (주)드론존|백용천 대표이사, 정디슨 연구소|정희윤 소장, (주)고구려식품|손준호 대표이사, 네오라이프(주)|오태균 대표이사 ▲한국발명진흥회장상 (주)브랜뉴 컴퍼니|김지원 대표이사, 꽃피는화덕피자|이준환 대표, (주)코코리본|신순옥 대표이사, 세류사임당학원|김순남 대표, (주)에버바이오|정재혁 대표이사, 파티를부탁해|윤지현·노다지 공동대표, (주)피엘에스|문상호 대표이사, (주)창체넷|최윤영 대표이사, 무진|심윤진·김준성 공동대표, (주)에타솔라|한민 대표이사 ▲한국특허정보원장상 대한수출포장(주)|송경석 대표이사, 더블캐처|김인철 대표, (주)아이와나테크|김찬동 대표이사, 코슈코 리포브|곽윤아, (사)대한케틀벨리프팅협회|박규연 대표, K-거리두기운동본부|이충직 상임대표 ▲한국디자인진흥원장상 코햄체|박소영 대표, 올리비아핸즈|유현주 대표, 가람과사람(주)|서창익 대표이사, (주)디자인사람들|이채형 대표이사, 윤앤수디자인과학연구소|김수미 대표가 수상했다.
- 2020-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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